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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광

지산동 고분군

11810

기본정보

기본정보
소재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산23-1
문의처 054-950-6323

소개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싸는 산 위에는 대가야시대의 주산성이 있다. 그 산성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위에는 대가야가 성장하기 시작한 서기 400년경부터 멸망한 562년 사이에 만들어진 대가야 왕들의 무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왕릉인 지산동44호와 45호 무덤을 비롯하여, 주변에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생각되는 크고 작은 704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은 대가야의 독특한 토기와 철기, 말갖춤을 비롯하여 왕이 쓰던 금동관과 금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가 많이 출토된 대가야 최대의 고분군이다.

지산동 고분군

내용

사적 제79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 추진 대상 선정_2015. 3.

지산리 44호분
지산리고분군은 북쪽에서 흘러오는 대가천(大伽川)과 서쪽에서 흘러내리는 안림천(安林川)이 합류하는 고령의 서쪽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구릉의 능선을 따라 조영된 수십기의 대형분과 경사면에 축조된 수백기의 중ㆍ소형분으로 구성된 가야지역 최대의 규모이다. 구릉의 북쪽 산 정상부에는 주산성(主山城)이, 또 구릉 동쪽 기슭에는 왕궁지(王宮址)가 위치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대가야의 왕릉을 포함한 핵심 고분군이 분명하다.
현재 사적 제7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부분 일제시대부터 도굴ㆍ훼손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7기의 고분이 발굴조사되는 등 정비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산리44호분은 주산 구릉의 맨 꼭대기에서 열 지어 늘어선 5기의 대형분 중에서 남쪽으로 100m정도 떨어진 경사면에 독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77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된 이 고분은 지름 27m, 높이 6m의 규모로서, 안에는 3기의 대형 돌방과 이 돌방을 둘러싸듯이 배치되어 축조된 32기의 소형 순장돌덧널이 들어 있었다. 유물은 대부분이 도굴되었지만 남은 것으로 금귀걸이, 금동그릇, 은장식쇠창, 야광조개국자 등이 있어 원래는 아주 다양하고 많은 껴묻거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특히, 오키나와(?繩)가 원산지인 야광조개국자는 대가야의 원거리 교역 활동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고분의 입지, 규모와 구조,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이 고분은 지금까지 발굴된 가야고분 중 최고의 위계(位階)를 가진 왕릉으로 보인다.

지산동 고분군

지산리 45호분
지산리44호분에서 산 위쪽으로 60m 가량 떨어진 능선 급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계명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규모는 지름 22~23.5m, 높이 2.85m로서 중앙부에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돌방 2기를 나란히 설치하고 그 주위에 11기의 돌덧널을 원을 그리듯이 돌아가면서 배치한 여러덧널무덤이다.
이 고분에는 무덤 주인공 이외에 12인 이상이 순장되어 있었습니다. 으뜸돌방인 1호 돌방에는 2명, 딸린돌방인 2호 돌방에 1명이 순장되어 있었으며, 주변11기의 돌덧널에서 9인 이상의 순장이 이루어졌다.
1호 돌방 내에서는 주피장자의 머리와 발치쪽에 각 1인이 순장되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금제귀걸이와 비취제 굽은 목이 달린 유리목걸이를 착용한 상태였다. 2호 돌방은 주로 토기가 부장된 창고와 같은 공간인데 동북단벽 가까이에 1인이 순장되어 있었다. 2호석실의 순장자도 1호 돌방의 순장자와 같은 금귀걸이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1, 2호 돌방 안의 순장자가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무덤 주인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 추정된다.
주변 11기의 돌덧널 중 2호 돌덧널에서는 40대 남성의 뼈가 있었는데 껴묻거리 가운데 쇠도끼와 화살촉이 나왔다. 쇠도끼는 위쪽에 가로로 뚫린 자루 구멍이 있어서 생활연장이 아니라 고구려 안악3호분의 벽화에 보이는 것과 같은 전투용 도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돌덧널에 순장된 사람은 무덤주인공을 보좌한 호위무사일 가능성이 높다. 그 외 돌덧널에 순장된 사람들은 일반민으로 짐작된다.

지산동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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